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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3월 15일, 이세령 목사는 요한복음 2장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 본문을 중심으로 "부족과 복음"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전했다. 핵심 질문은 "왜 예수님의 첫 번째 표적이 포도주 부족이라는 결핍의 현실이었는가"이며, 이를 통해 인간의 부족함을 신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탐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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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오랫동안 인간의 부족함을 원죄와 연결된 비참한 현실, 즉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이해해 왔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성경을 깊이 묵상하면서 이 관점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요한복음 9장의 날 때부터 시각 장애를 가진 사람에 대해 사람들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물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함"이라고 답했다. 이 목사는 이 대목에서 부족이 곧 죄가 아닐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창세기 1장 연구를 통해 그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보시기에 좋은" 세상이 반드시 풍요롭고 완전한 상태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사람에게 두 가지를 명하셨다: 경작(일함)과 지킴(관리). 일한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부족을 채우기 위한 행위이며, 이는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부터 약간의 결핍이 있는 상태로 창조하셨음을 시사한다.
또한 하와를 "돕는 배필(헬퍼)"로 규정한 것은 모든 인간관계가 이용이 아닌 도움으로 연결되도록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즉, 선한 세상이란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는 관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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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잔치 현장에는 유대교 결례에 쓰이는 돌 항아리 6개가 있었다. 이 목사는 이를 구약 율법 체계의 총화로 해석한다. 항아리들은 부족한 현실 앞에서 아무런 답을 주지 못했다. 이는 인간이 만든 종교 체계, 이념, 사회 시스템이 결핍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함을 상징한다.
기복 신앙("예수 믿으면 부자 된다")도 같은 맥락에서 비판된다. 이런 접근은 오히려 사람을 끝없는 결핍의 순환 속에 가두며, 물질적 풍요가 아무리 쌓여도 만족이 없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 자본주의, 의료보험 등 사회 시스템도 부족을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한계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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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어머니가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했을 때, 예수님은 "여자여, 나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목사는 한국어 번역의 문제를 지적하며, 원문은 "나와 당신과"라는 두 주체를 명시한다고 강조한다.
이 말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육신의 어머니로서 아들에게 요청하는 것에는 내가 응할 수 없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로서 이 부족한 현실에는 내가 할 일이 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이를 즉각 이해하고 종들에게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명했다. 이는 그녀의 요청이 단순한 모자(母子) 간의 부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께 드리는 기도와 같은 성격이었음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결례 항아리에 물을 채우게 하셨고, 그 물은 "좋은 포도주"로 변했다. 여기서 "좋다"는 표현은 창세기 1장의 "보시기에 좋았더라"와 동일한 단어로, 결핍의 현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창조의 선함으로 회복됨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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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AI의 급격한 발전(ChatGPT 등)을 언급하며, 지능·생산성·효율로 인간을 정의하는 시대에 인간됨의 본질을 재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약함, 모자람, 상처, 아파함이야말로 인간됨의 핵심이라고 주장한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은 여전히 아파하고 결핍을 느끼며, 바로 그 지점에서 복음과 교회의 역할이 시작된다.
르네상스적 완벽 인간(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을 이상으로 삼는 인문학적 관점은 복음의 가치와 다르다. 복음은 완벽함이 아니라 부족함 속에 있는 선함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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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목사는 설교를 다음과 같이 마무리한다. 예수님이 첫 번째 표적으로 포도주 부족의 현실을 택하신 것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인간의 약함을 함께 짊어지기 위함임을 선언하는 것이다("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진정한 선한 세상은 능력 있는 자의 화려한 성취가 아니라, 작은 자가 자신의 작은 것을 내놓아 함께 서는 모습에서 실현된다. 자신의 모자람을 수용하고 타인의 모자람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것, 그리고 서로의 부족을 돕는 이로 서는 것—이것이 오늘날 복음의 본질이며, AI 시대에 교회가 붙들어야 할 핵심 사명이다.
본 문서는 2026년 3월 1일 양순모 목사가 여호수아 3장을 본문으로 전한 설교의 요약이다. 설교의 핵심 주제는 하나님의 기이한 일을 경험하기 위한 두 가지 조건, 즉 말씀에 따른 순종과 성결한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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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 세계적으로 기상 이변이 빈번하다. 중국의 100년 만의 홍수, 브라질·중동·아프가니스탄·아프리카의 홍수, 미국의 100여 개 토네이도 동시 발생, 일본 아오모리현의 1.7m 적설 등이 그 예다. 이러한 사건들은 두려움과 염려를 자아내지만, 오늘 본문 여호수아 3장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기이한 일을 선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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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 40년 만에 요단강 동편에 선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가 배경이다. 여호수아는 정탐꾼의 보고를 듣고 아침 일찍 일어나 요단강으로 향했으나(1절), 2절에 따르면 사흘 동안 그 자리에 머물렀다. 이유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는 "가야 할 때와 서야 할 때"를 분별하는 지혜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이 원리의 반례로 두 성경 인물이 제시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 학습, 혹은 타인의 유행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린다. 설교자는 한국 사회의 유행 민감성(델리 점프, 봄동 비빔밥 등)과 미신·오늘의 운세 의존을 예로 들며, 이러한 기준의 한계를 지적한다.
본문 3절은 명확한 답을 제시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메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보고 따라갔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와 실존을 상징하며, 이를 오늘날에 적용하면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따라 가고 서는 것이다.
>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편 119:105)
이 말씀을 "신호등"으로 해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초록불이면 가고 빨간불이면 서야 한다. 세상의 유행, 미신, 내면의 욕심이 아닌 말씀에 따른 순종이 있을 때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 삶 가운데 일어난다.
본문 5절에서 여호수아는 백성에게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히브리어 원어 카다쉬(קָדַשׁ)는 성결, 성별, 거룩하게 구별하라는 의미의 제사적 용어다.
하나님의 기이한 일(요단강 물이 멈추는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준비 상태와 연결된다. 만약 백성이 성결하지 못하면 그 기이한 일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는 마태복음 13장의 나사렛 사건과 같은 원리다: 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려 하셨으나,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배척하자 "그들이 믿지 않아서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않았다"(58절). 하나님의 말씀과 무관한 생각, 욕심, 자랑은 은혜의 역사를 방해하는 요소다(디모데후서 2:21 인용).
성결의 실천적 의미는 레위기 11장의 음식 규례를 통해 설명된다. 먹을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은 영양학적 이유가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라는 상징적 요구다. 홍수가 육지를 훑고 지나가면 육지가 손해를 보듯, 믿는 사람들이 세상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면 영적 피해를 입는 것은 믿는 사람들이다.
>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베드로전서 1:15–16)
설교자는 오늘날 성결의 핵심을 절제로 정의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먹는다고 다 먹지 말고, 다 간다고 다 가지 말며, 구별된 삶을 살 때 하나님의 기이한 일이 임한다.
광야 세대(만나 세대)에게 요단강이 멈추는 사건은 단순히 "기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었다. 그들은 이미 홍해가 갈라지고, 10가지 재앙, 구름기둥·불기둥, 만나와 메추라기를 일상으로 경험한 세대였다.
설교자는 다윗의 고백(시편 131:1)을 인용하며, 기이한 일을 구하기보다 엄마 품에 안긴 어린아이처럼 고요하고 잠잠하게 여호와를 바라는 자세를 권면한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와 무관한 일을 그냥 이루어주시는 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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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는 청중에게 세 가지를 권면하며 마무리한다.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함께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에 다음세대를 전담하여 섬길 사역자를 보내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우리 교회에 넉넉한 예배 공간을 허락해 주시도록 기도해 주십시오.